Sunday, September 29, 2019

사신과의 동거 #6 (백설공주계모)

새로운 여비서가 들어오고 나서 갑자기 야근을 하겠다는 준호의 말에 황당함을 감추며
쥰은 자신의 아파트로 먼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종관에게서 미례가 단식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안 하세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으시고...어쩌죠, 대장?」

그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종관이 달려나와 걱정스런 얼굴로 보고했다.

「너무 화 내지 마세요, 대장. 속이 많이 상하셔서 그러신 걸 거예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미례의 방으로 향하는 쥰을 종관이 걱정스럽게 따라왔다.

「알았어요, 대장. 저...잣죽 끓여 놓았으니 드시게 하세요.」

쥰이 우뚝 멈춰 서서 그를 노려보자 종관은 고개를 떨구며 돌아서서 아파트를 나갔다.
대장 성질에 부디 누님과 싸움이나 하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걱정을 안고 종관은 자신의 숙소로 들어갔다.
미례의 방문 앞에 멈춰선 쥰은 잠시 호흡을 고르며 분노를 삭혔다. 그리고 손을 들어 가볍게 방문을 두드렸다.

「소용없어! 이 빌어먹을 집에서 나가게 해줄 때까지는 절대 아무것도 안 먹을 거야! 내가 굶어 죽은 다음에 우리 부모님하고
오빠들에게 너네 미치광이사신이 뭐라고 변명할지 귀신이 돼서라도 내가 꼭 지켜보고 말 거야!」

앙칼지게 터져 나오는 미례의 목소리를 들으며 쥰은 가슴을 거세게 들썩였다.

'뭐라고 하루종일 굶었다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저 사나운 목소리가 하루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믿어!
그리고 뭐라고? 빌어먹을 집에 미치광이 사신? 정말 이 망할 여자가!' 쥰은 당장이라도 방문을 박차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어두운 방안에 불을 켰다.

「제발 날 가만 놔두라니... 뭐야? 또 당신이야?」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던 미례는 그를 보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거기 장승처럼 서 있지 말고 빨랑 나가요. 내 입 가지고 내가 안 먹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에요?」

미례는 시트를 끌어올려 얼굴위로 뒤집어쓰며 웅얼거렸다.

「정말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건데요?」

하지만 성큼 다가온 그는 시트를 젖히며 그녀를 무섭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노려본다고 내가 먹을 줄 알아요? 여기서 내보내 줄 때까지는 물 한 모금 안 마실 테니 그렇게 알아요.」

미례 역시 지지 않고 그를 노려 보아주었다. 그리고 그가 등을 돌려 방에서 나가자 적이 안도했다.
흥! 별것도 아니면서 폼만 잡고 있어! 내가 이대로 질줄 알고? 어림없지!
미례는 결심에 결심을 다지며 침대에 누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곧 그림자가 그녀 위에 드리우며 소리 없이 그가 돌아왔다. 어느새 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고 말이다.

「아니 정말 귀머거리예요? 내가 안 먹겠다고 한말을 어디로 들은 거예요?」

침대 협탁 위에 쟁반을 내려놓은 그는 억지로 그녀를 침대에서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죽 그릇을 손에 들고 한 수저 떠서 그녀 입에 디미는 것이었다.

「진짜 미치겠네. 안 먹는다니까!」

미례는 그의 손을 탁 치며 소리를 버럭 질렀고 그 바람에 수저에 담겨 있던 죽이 그의 손등으로 흘렀다.

「죽 그릇 엎어 버리기 전에 당장 가지고 나가요!」

미례는 그가 자신의 손등에 묻은 죽을 핥는 것을 지켜보며 엄포를 놓았다.
순간 그의 두 눈이 살벌한 빛을 발하는 가 싶더니 갑자기 죽을 떠서 자신의 입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 당신이나 먹는 것이...읍!」

먹이는 것을 포기한 그가 직접 먹으려 한다고 생각했던 미례는 기습적으로 그가 자신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으며
입술을 밀어 부치자 당황하고 말았다. 그가 입안으로 밀어 넣어 주는 죽들을 얼떨결에 받아 목안으로 넘기며
미례는 몸 속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에 아찔해져왔다.

고집이 센 그녀의 기를 꺾기 위해 자신의 입을 통해 그녀의 입안으로 음식물을 집어넣던 쥰은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끼며 게걸스럽게 탐하듯 키스를 퍼부었다. 참을 수 없어. 가져버릴 거야.
이 말많고 그를 괴롭히는 조그만 마녀를 당장 가져버려야겠다고 쥰은 결심하며 손에든 그릇을 치우기 위해 잠시 몸을 떼었다.

「알, 알았어요. 먹으면 되잖아요! 먹으면 될 거 아니야!」

그의 입술에서 풀려나자 미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하마터면 욕망에 져서 일을 저지를 뻔했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또다시 반복할 수 있는 거지?

「이리 줘요. 그렇게 우악스럽게 먹이지 않아도 나 혼자 충분히 먹을 수 있어요.」

미례는 그의 손에서 그릇을 빼앗아 열심히 입에 떠 넣기 시작했다.
'뭐야? 난 이렇게 미칠 것처럼 원하고 있는데 이 여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거야?'
쥰은 열심히 죽을 떠먹고 있는 그녀를 노려보며 허탈감마저 느꼈다. 그녀의 손에서 그릇을 빼앗아 집어 던지고
그대로 덮쳐버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그의 양손은 주먹 쥐어져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자요, 다 먹었으니 그만 노려보고 가지고 나가요.」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미례는 그에게 척하니 내밀었다.

「어, 어? 왜 그래요? 다 먹었잖아요?」

미례는 그녀에게서 그릇을 받아 들 생각을 안하고 몸을 숙여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섰지만
침대머리판에 등이 닿아 갈곳이 없었다.

「설마 죽 먹은 거 다시 내 놓으란 뜻은...헉!」

쫑알대는 그녀의 입가를 그가 부드럽게 핥아내며 묻어 있던 죽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서서히 혀로 그림을 그리듯 그녀의 입가를 더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미치광이 사신이 정말 미친 것 같았다. 미례는 오금이 저려오는 느낌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어
그가 희롱하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늘게 떨리는 몸을 느끼자 쥰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몸을 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그릇을 받아 쟁반에 담아 들고 조용히 문을 닫으며 방을 나왔다.

「야... 이... 진짜 미친놈아!」 하는 그녀의 악담을 들으며.







단식을 하루만에 포기한 미례는 다음날 그가 출근하고 없는 동안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넌더리가 나서 쫓아 보내게 만들까
열심히 궁리를 해보았다.

「재웅아.」

그녀는 달콤한 음성으로 재웅을 꼬셨다.

그리고...

쥰은 그 날 갑자기 비서실직원들과 회식을 결정한 준호에게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절대로 그 작은 마녀가 보고 싶다거나 걱정되어서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 저 대장님.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온 집안에 탄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누님이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하셔서...사오라는 재료를 사다 드렸거든요...처음에는 정말 괜찮은 것들만 만드셨는데...」

재웅은 성큼성큼 화난 듯 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향하는 쥰의 뒤를 따르며 설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상하게 이것저것 하시는 것마다 다 태우시는 거예요.」

재웅의 마지막 설명을 끝으로 쥰의 발은 주방입구에서 멈춰 섰다.
마치 원자폭탄이 그의 주방에 떨어진 것 같았다. 싱크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더럽혀진 각종 그릇들은
그의 집에서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 실패작으로 널브러진 각종 음식들은-
이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모두 새카맸다. 일부러 태우기라도 한 듯.
아마 각종 냄비와 후라이팬들이 일센티는 넘게 눌러붙어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그의 가스오븐레인지. 정말 처참했다. 본래의 메탈한 은빛색채를 잃어버리고 검은 때-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에 뒤집혀 과연 온전한 기능을 발휘할지 걱정이 되었다. 또한 활짝 열려진 전자레인지 또한 탄 음식 잔해를 뒤집어쓰고
신음하고 있었다.

「어머, 오셨어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작은 마녀는 활짝 열린 냉장고-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한달 식료품들이 작은 마녀의 손에 모조리 날아간 듯 싶었다.-
앞에서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보시다 시피 음식을 좀 만들다가 약간 태웠어요. 시장하시죠? 이것 좀 드셔볼래요? 탕수육이에요」

새카맣게 탄 뭔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여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쥰은 뒤돌아 주방을 나왔다.
그의 등뒤에서 덜덜 떨며 있던 재웅은 얼른 비켜서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쥰은 딱 한마디, 아니 눈짓을 했다. '깨끗이 치워.'

그리고 재웅은 밤새 울면서 주방 청소를 했다는 전설이 흘러 전해 내려왔는데...
우리의 누님 신미례는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펼치고 단잠을 주무셨다나 어쨌다나...
침묵의 사신은 어떻게 됐냐구? 그야 너무 화가 나서 밤새 분노로 떨었다지 아마?

주방을 초토화시키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음날 미례는 없는 부지런을 떨며 갑자기 빨래를 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저...미례씨...이거 정말 세탁기로 돌려도 되는 거 맞아요?」

그리고 다음날 당번이었던 진규는 재웅에게 전해들은 말이 있어 몸을 사리며 그녀가 하는 일들을 근심스럽게 지켜보았다.

「물론이지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진규씨는 뜨개질이나 하고 있어요. 갇혀 있었더니 심심해서 운동 좀 하려는 거예요.」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운동에 들어가는 거냐고 물으려던 진규는 슬픈 빛을 띄우는 미례의 두 눈을 보자
마음이 약해져 거실 쇼파에 자리를 잡고 뜨개질에 몰두하며 그녀가 하는 일에서 완전히 관심을 끊었다.

「다녀오셨어요, 대장? 오늘은 정말 조용히 지냈어요.」

그 날 퇴근한 쥰을 맞아 진규는 활짝 웃으며 보고했다.
재웅의 말 때문에 걱정했던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례는 정말 아무런 사고를 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아니 조용히 세탁기만 돌리는 것 같았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진규는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쥰의 등뒤에 얼른 인사를 하고 자신의 아파트로, 앞집으로 갔다.

방으로 들어간 쥰은 미례가 이상할 만큼 조용하고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의아했지만
집안이 깨끗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옷을 벗었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 후 타월만 허리에 두르고 방으로 돌아와 옷장 문을 열었다. 그런데...
순간 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모든 옷장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팬티는커녕 양말 한 짝 없었고 양복에 와이셔츠까지 그의 옷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쥰은 마치 새로 들여놓은 가구처럼 텅 비어 있는 옷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미례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뭐예요? 이젠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오는 거예요?」

침대 위에서 배를 깔고 누워 다리를 흔들며 잡지를 읽던 미례는 들이닥친 쥰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아니 속으로는 벌거벗은-아래를 수건으로 감싸고 있기는 했지만.-그를 보고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나보고 뭘 달라는 거예요?」

무시무시한 얼굴로 다가와 그녀에게 손을 펴서 내미는 그를 올려다보며 코끝을 찡그렸다.

「설마 이 잡지가 탐나는 거였어요?」

미례는 자신이 보고 있던 잡지를 그의 손에 올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가차없이 바닥으로 집어 던져 버리고 그녀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정말 왜 이러는 거예요?」

미례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그가 몸을 돌려 그녀의 옷장으로 다가가 열어 젖혔다.
옷장 문마다 모두 열어젖히고 그가 뭔가를 찾았지만 미례는 숨죽여 웃으며 모른 척 했다.

「뭘 찾는 건데요? 아, 당신 옷을 찾는 건가요? 그거라면 내가 다 빨았는데. 아마 건조대에 있을 거예요.
다 못 빤 것은 세탁실에 있구요.」

미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해 주었다.
뒤돌아 그녀를 죽일 듯이 바라보던 그가 방문을 거칠게 열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쥰은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고급양복들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건조대에 널려있는 모습과
한쪽에 뭉쳐져 있는 속옷과 와이셔츠들. 세탁실은 더 끔찍했다.
아예 물에 절여졌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오늘은 기필코 마녀 사냥을 하고 말테다!

「어? 왜 그래요? 난 그저 놀고 먹는 게 미안해서 빨래를 해줬을 뿐이데.」

미례는 다시 그녀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그가 부술 듯 닫으며 다가오자 항의하듯 말했다.

「그러게 날 그냥 내보내 달라고 했잖아요. 내가 여기 있으면 당신 집이 어떻게 될지 난 책임 못 져요.」

미례는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에게 밀려 침대까지 왔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가기 위해 내 집과 옷들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단 말이지 이 작은 마녀!'
쥰은 이를 갈며 그녀의 양팔을 붙잡아 침대위로 넘어뜨렸다.

「악! 왜 이래요?」

미례는 침대에 널브러진 자신의 위로 그가 올라오자 비명을 지르며 몸을 굴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재빨리 그녀의 다리를 잡아 끌어당겨 제자리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이것 놔! 이 나쁜 놈!」

미례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그의 손0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발길질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그녀는 침대에 바르게 누워 그의 밑에 깔려있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의 손이 그녀의 셔츠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미례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 뜯기듯 벗겨진 셔츠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이어 그의 손이 청바지로 향했다. 지퍼를 내리고 몸부림치는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우악스럽게 붙잡고 다른 손으로 가쁜 하게 벗겨낸 그는
얼마 되지 않아 그녀를 반라로 만들어 놓고 만족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이 변태자식! 날 어쩌려는 거야?」

그의 커다란 손이 브래지어를 잡아뜯듯 벗겨내 가슴을 드러나게 하자 미례는 양팔로 몸을 감싸며 악을 썼다.

「혹시 날 강간할 생각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을걸.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그리고 당신 부하들이 이런 당신의 행동을 알면 어떻게 행동할까?」

미례는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 정신 없이 입을 놀렸다. 하지만 곧 거친 숨을 들이마시며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양 손목을 붙잡아 머리위로 누른 그가 그녀의 가슴을 입에 넣고 빨기 시작했던 것이다.
온몸으로 퍼지는 쾌감에 미례는 눈을 꼭 감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이건 말도 안돼! 정신차려 신미례! 여기서 이 미친놈한테 당할 순 없어.
하지만 그의 입과 혀가 그녀의 가슴을 희롱하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끼인 듯
더 이상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팬티위로 그녀의 여성을 적시듯 애무하는 혀의 놀림에 미례는 풀려난 팔로 그의 어깨를 붙잡고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이윽고 그녀의 욕망을 자신 안에 담기라도 하듯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와 닿으며 한 입에 삼켰다.
자신의 입안을 거침없이 돌아다니며 당당히 소유를 주장하듯 애무하는 그의 혀에게 미례는 무기력하게 스스로를 내주고 있었다.

따르릉~따르릉~ 어디선가 자지러지는 벨소리가 울려왔지만
미례는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의 목에 매달려 그가 주는 쾌락에 빠져 있었다.
이대로 그녀 안에 자신을 묻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녀를 갖지 못한다면 아마 죽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녀를 향한 그의 욕망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것이었다. 하지만...그의 직업은...
그의 본성은 울리고 있는 전화벨을 정확히 감지했으며 받아야 한다고 그에게 경고했다.
그래서 쥰은 그녀에게서 억지로 몸을 떼고 일어났다.
마치 팔다리를 잘라내는 상실감을 느끼며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온 쥰은 몸에서 벗겨져 나간 타월을 무시하고
나체로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쥰이냐?」

간단히 물어오는 음성은 바로 노회장님이셨다.

「はい.」

쥰은 간단히 대답했다.

「지금 나 좀 보자.」

쥰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노회장은 간단히 용건만 말했다.

「すぐ行きます. (곧 가겠습니다.)」

쥰은 수화기를 내려놓다 방에서 나와 그를 노려보고 있는 미례를 발견했다.

「あなた日本語はしますね. (당신 일본말은 하는군요.)」

미례는 그를 향해 일본어로 말했다.
그가 어쩌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한국말에 서툴기 때문에 스스로의 약점을 들어내기 싫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벗어 놓았던 옷들을 다시 입고 나와 현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どこを行こうとするんですか? (어딜 가려는 거죠?)」

미례는 자신 역시 셔츠 하나만 간신히 걸치고 나온 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그를 따라 나섰다.

「誰に?いに行く?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거예요?)」

미례는 구두를 신으려는 그를 막아서며 소리질렀다.
왠지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여자일 것 만 같이 느껴져 미례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電話した人が誰ですか? (전화한 사람이 누구죠?)」

하지만 그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다 밀치고 나가버렸다. 뒤이어 그의 모습을 감추며 문이 굳게 닫혀버렸다.
미례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신미례를 보호할 것.> 쥰은 진규에게 문자를 날리고 나서 이어 자신의 옷들을 다시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문득 상처 입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미례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콕콕 쑤셔왔다.
노회장의 부름만 아니었으면 절대로 그녀를 그냥 놔두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뜻밖이었다.
그녀가 일본어를 할 줄 알다니... 물론 수다만 떠는 머리가 텅빈 여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쉬고 있는데 내가 널 방해 한 건 아니냐?」



병실로 들어서자 노회장이 반갑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아닙니다, 회장님. 무슨 급한 일이라도?」

쥰은 침대 옆 간병인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급한 일은 무슨. 그저 늙다보니 잠이 안 오는 구나. 그래서 쓸데없이 이것저것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

「회장님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그러시는군요.」

쥰은 노회장의 손을 잡아 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그놈만 생각하면 내가 마음이 아프구나. 워낙 상처가 많은 놈이라서 말이다. 그래서 항상 네게 고마워하고 있단다, 쥰아.」

그는 쥰의 손을 마주잡아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회장님.」

「네가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이십 년이 되었구나.
그때 네가 준호 곁에 있어 주기로 결심해 줘서 정말 고마웠단다.」

「한번도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회장님은 목숨과도 같으니까요.」

「그래. 네 마음 다 안다 쥰아. 그래서 네게 고마운 거야. 내가 죽는다 해도 네가 준호 곁에 있어줄 테니까.」

그의 말에는 쥰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저 작은 바램이라면 그놈이 나주출장안마 내가 죽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보는 건데... 통 관심이 없으니...」

노회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혹시 요즘 마음에 두고 사귀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던?」

「글쎄요...」

쥰은 노회장의 은근한 질문에 잠시 새로 비서실로 들어온 한지연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를 향한 준호의 관심이 남달랐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야. 다시 연이를 만나 연이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결혼이라도 할 수 있어.

얼마 전 준호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를 회상하며 쥰은 잠시 머뭇거렸다.

-연이야...왜 오지 않는 거니? 왜 날 찾아오지 않는 거야? 날 잊어버린 거니? 그런 거야?

그리고 바로 어제 밤. 회장의 운전기사인 김기사의 연락을 받고 한밤중에 달려간 클럽에서
술에 취한 준호를 택시에 태워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그의 말 또한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연이라는 소녀에게 집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뭐? 아직도 십 년 전 그 여자아이를 생각하고 있단 말이냐?」

노회장은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네. 그 연이라는 소녀와 만나면 결혼하겠다고 말씀하셨을 정도니까요.」

「그래,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연이라...」

노회장은 깊은 생각에 잠겨 눈을 감았다.

쥰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 감당해야할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자신을 자극하는 그 작은 마녀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아직도 자신의 몸은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이 끊임없는 갈망은 아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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